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펠레/국가대표 경력 (문단 편집) === 조별 리그(16강)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a5EBOkd7F7U)]}}} || || '''{{{#007000 펠레 vs 불가리아}}}'''[* 펠레의 골 장면은 1분 30초부터 나온다.] || 첫 경기 상대는 불가리아였다. 펠레는 경기 14분 드리블로 찬스를 만들어내던 중 디미타르 야키모프의 태클에 걸려 넘어졌다. 펠레는 본인이 얻은 프리킥 찬스에서 직접 슈팅을 때렸는데, 이 슈팅이 골망을 가르게 되면서 브라질의 대회 첫 득점을 장식했다. 불가리아 골키퍼가 두 손을 모두 뻗어 방어를 시도했으나 그대로 골대 안에 꽂혔다. 그야말로 엄청난 파워의 프리킥이었다. 경기 초반부터 펠레는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내내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며 경기를 지배했다. 경기 63분에는 가린샤가 아웃프런트 킥으로 환상적인 프리킥 득점을 터뜨렸다. 가린샤는 30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드리블 실력으로 경기 내내 불가리아 수비진을 유린했다. 경기는 그대로 흘러갔고, 심판 쿠르트 첸셰르가 휘슬을 불며 경기가 종료되었다. 2-0승리였다. 컨디션이 상당히 안 좋았던 것 치고 산뜻한 출발이었다. 펠레는 정말 만능 공격수가 되어 있었다. 역시 브라질은 브라질이었다. 외국의 한 축구팬이 이 경기에서 펠레의 스탯을 옵타의 기준으로 세어본 결과 다음과 같이 나왔다. 1 goal 81.82 Passing Accuracy 3 Key Passes 3 Chances Created 10 Dribbles 7 Fouls Won [[https://www.bigsoccer.com/threads/messi-vs-pele-in-dribbling-and-passing.2107615/page-3|출쳐]] 그러나 펠레는 피로했던 탓인지 경기 이후 통증을 호소했다. 결국 다음 경기 헝가리전에서는 뛰지 못하게 되었다. 헝가리는 세대교체를 완료한 상태였고, 여전히 유럽에서 알아주는 선수들을 상당히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1962년 월드컵에서 최우수 신인 선수로 선정된 [[플로리안 알베르트]]도 있었다. 매직 마자르 시절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매우 강한 팀이었다. 브라질은 페렌츠 베네에게 오프닝 선제골을 얻어맞았다. 그리고 10대의 신예 토스탕이 멋진 동점골을 터뜨렸다. 경기는 상당히 팽팽했다. 그러나 경기 64분 야노스 파르카스가 골을 터뜨렸고, 칼만 메스죌리가 13분 후 추가골을 터뜨리며 브라질의 패색이 짙어졌다. 펠레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3대1로 패배하였다. 이 경기는 [[가린샤]]가 브라질 국가대표팀에서 뛰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록한 패배이기도 했다.[* [[http://www.rsssf.com/miscellaneous/garrincha-intl.html|가린샤의 A매치 출전 및 득점 기록]]] 브라질은 1954년 이후 12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서 패배를 경험했다. 다음 상대는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포르투갈]]. 포르투갈에는 [[에우제비우]]를 비롯한 벤피카 선수들을 필두로 모든 선수들이 독기를 잔뜩 품고 있었다. 벤피카는 4년전 1962년 인터컨티넨탈컵에서 펠레를 앞세운 산토스에 참패했던 기억이 있고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역시 1964년의 타사 다스 나소잉스에서 [[자이르지뉴|새파랗게 어린 선수]]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4-1로 패배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페올라 감독은 펠레가 부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이겨야 하니 내보냈다.[* 이것은 36년 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년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부상 중이던 팀의 에이스 [[지네딘 지단]]을 억지로 내보냈던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펠레는 평소라면 날쌔게 피했을 태클들을 전부 얻어맞았다. 시작부터 마리우 콜루나의 거친 태클이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센테에게 걷어차이면서 옆에 있던 마리우 콜루나 위에 그대로 엎어졌다. 펠레를 향한 태클에 분노한 브라질의 발테르 시우바는 프리킥 상황에서 골키퍼 호세 페헤이라에게 고의적인 차징을 걸기도 했다. 양측이 불필요한 파울들을 주고받은 이후 경기는 신경전으로 번졌다. 양팀은 서로 더러운 플레이를 했고, 포르투갈이 시모잉스의 골로 1-0 리드를 가져갔다. 브라질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12분 후 마리우 콜루나의 롱패스를 191cm 장신의 주제 아우구스투 토히스가 머리로 편안하게 받아서 중앙으로 보냈고, 에우제비우가 이를 놓치지 않고 득점을 기록했다. 포르투갈이 2-0으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골이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축구 경기 중에 나와서는 안 될 비매너 플레이가 나왔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_HyGZeweBiI, start=160)]}}} || || '''{{{#007000 더블 백태클}}}''' || 포르투갈의 라이트 백 주앙 모라이스가 펠레의 다리를 노리고 백태클을 걸더니,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난 펠레의 다리를 향해 노골적인 태클을 한 번 더 걸었던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더블 백태클'''이다. 펠레도 이 때 입은 부상이 커리어에 있어 최악의 부상이었다고 회고한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이나 고전 축구 매니아들은 펠레의 신체적 능력의 정점이 끝난 시기를 이 시기로 꼽는다. 모라이스의 태클은 아예 대놓고 펠레의 선수 생명을 끊으려 시도했던 악질적인 반칙이었지만 잉글랜드 출신의 심판 조지 맥케이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유럽이 비유럽에게 잔인한 반칙을 저지르고도 심판이 가만 냅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8강#s-2|2006년 월드컵 8강전 아르헨티나 대 독일 전]]에서도 독일의 공격수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아르헨티나의 [[골키퍼]] [[로베르토 아본단시에리]]에게 고의로 마치 [[죠 히가시]]의 [[타이거 킥]]을 연상케 하는 무릎찍기를 시전했고 이로 인해 아본단시에리는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들것에 실려나갔지만 심판은 클로제에게 그 어떤 판정도 내리지 않고 냅뒀다. 이 때의 상황은, 아르헨티나가 독일을 1-0으로 앞서고 있던 상황이었고 [[로베르토 아본단시에리]]는 당시 [[남아메리카|남미]] 최고의 [[골키퍼]]로 이 월드컵에 나와서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코트디부아르]]에게 1골,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멕시코]]에게 1골을 내준 게 전부일 정도로 철벽 수비를 자랑했다. 이것 때문에 골키퍼가 바뀐 아르헨티나는 결국 실점을 했고 [[승부차기]]까지 가서 패하고 말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ickpele.jpg|width=100%]]}}} || || '''{{{#007000 그라운드에 쓰러진 펠레}}}''' || 펠레는 잠깐 밖에 나가서 치료를 받고 경기는 끝까지 뛰었다. 이 때는 선수 교체 제도가 없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에이스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던 이 경기에서 브라질은 악전고투했지만 포르투갈에게 3대1로 패배해 탈락하고 말았다.[* 월드컵 우승팀이 다음 대회(4년 후)의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이것 말고도 2002년 프랑스, 2010년 이탈리아, 2014년 스페인, 2018년 독일이 있다.] 이 대회에서 플레이는 커녕 수비수들에게 얻어맞기만 하고 온 펠레는 분통을 터뜨렸다. > '''"축구는 예술이 되어 기술로 관중을 끌어모으는 일을 스스로 포기했고, 이제 진짜 전쟁이 되어버렸다."''' >---- > [[펠레]] [[https://www.google.com/amp/s/amp.theguardian.com/football/blog/2016/jul/24/1966-world-cup-final-conspiracy-refereeing-50-years|#]] 펠레의 분노는 누구나 이해할 만 했는데, 사실 당시 에이스 공격수에 대한 보호책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먼저 선수 교체. 부상당한 선수를 교체해 줄 수가 없으니, 경기 중 A가 부상을 입으면 A의 팀은 10명만 뛰어야 했다. 게다가 그 한 명이 펠레 같은 에이스라면 효과는 더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에이스 공격수 중 [[유리몸|몸이 약한 선수]]들은 자주 부상을 입었다. 1958년 월드컵에서 불멸의 기록을 세운 [[쥐스트 퐁텐]] 역시 커리어 내내 수비수들의 악질적인 태클에 시달리다 결국 28살의 나이에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으로 선수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또한 60골로 잉글랜드 리그 한 시즌 역대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는 [[딕시 딘]]도 수비수와의 경합 과정에서 [[고자|한쪽 고환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펠레는 1957년부터 1966년까지 59경기에 출전해 57골을 넣고 만 '''25'''세의 나이에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집어 던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